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1000승 이상을 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 감독이다. 그런 멜빈 감독이지만, 이정후(26‧샌프란시스코)는 특별하다. 멜빈 감독은 이정후와 같은 상황에 처한 선수들을 수없이 봤다고 했다. 하지만 이정후와 같은 선수를 보지는 못했다고 단언했다. 이정후가 현시점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와 다름 아니다.
멜빈 감독은 “그는 단지 야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”면서 이정후의 순수함을 즐거워한 뒤 “그는 새로운 나라, 새로운 사람들, 새로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스프링트레이닝 훈련 첫 날부터 편안했다.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꽤 많은 선수들을 상대해봤다. 하지만 그처럼 빨리 적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”고 말했다. 이정후의 뛰어난 적응력을 칭찬한 것이다.
샌프란시스코는 지난해 공격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. 팀 득점 생산력이 내셔널리그 최하위 수준이었다. 결국 승률이 5할 밑으로 처졌다. 그런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팀이 가진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봤다. 다른 외야수를 모두 제쳐두고 이정후에 달려들었다. 결국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를 질러 치열했던 이정후 영입전의 승자가 됐다. 원 소속팀 키움에 줘야 할 포스팅 금액까지 합치면 1억3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. 귀한 몸이다.
이정후는 빨리 메이저리그에 적응해야 한다. 사실 왕도가 마땅치 않다. 열린 자세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. 지금까지 과정은 꽤 순조롭다. 시범경기에서의 좋은 성적이 이를 증명한다. 가벼운 옆구리 통증, 그리고 햄스트링 통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. 이정후는 시범경기 13경기에서 타율 0.343, 출루율 0.425, 장타율 0.486, OPS(출루율+장타율) 0.911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. 이는 이정후에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던 일본의 천재 타자들인 스즈키 세이야(시카고 컵스), 요시다 마사타카(보스턴)의 첫 해 시범경기 성적보다 훨씬 좋다. 이정후의 적응력을 실감할 수 있다.
팀이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줬다. 이정후는 배트 투 볼 스킬, 즉 콘택트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. 메이저리그 전문가들, 스카우트들, 그리고 통계 프로젝션의 생각도 같다. 이정후의 장타율이나 출루율은 KBO리그 당시보다 꽤 큰 폭으로 떨어지겠지만, 타율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. 삼진을 잘 당하지 않고 공을 인플레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. 이정후는 시범경기에서 그런 자신의 장점을 잘 보여줬다. 이정후는 4개의 삼진을 당한 반면 5개의 볼넷을 골랐다.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다. 물론 메이저리그 본 경기에 들어가면 이 비율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기대치 정도는 충족할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.
여기에 이정후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부분에서도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. 우선 파워다. 이정후는 KBO리그 시절 파워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. 그러나 이번 시범경기에서 100마일 이상의 빠른 타구 속도를 보여주며 홈런 1개, 2루타 2개를 기록했다. 그 결과 시범경기 장타율도 0.486으로 준수했다.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인 오라클파크는 좌타자가 홈런을 치기 쉽지 않은 구장이지만, 대신 2루타나 3루타는 상대적으로 잘 나오는 구조다.
또한 이정후는 두 개의 도루는 물론 예상보다 빠른 스피드를 보여주며 주루에서도 팀에 공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. 멜빈 감독이 이정후의 주력이 기대 이상이라면서 그의 발도 팀 공격 전략에 넣어야 할 수 있다고 했을 정도였다. 원래부터 메이저리그에서도 평균 이상의 중견수 수비라는 수비력 또한 크게 흠을 잡을 게 없었다. 기본적인 능력은 다 과시했다. 공을 잘 쫓았고,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다. 구장 구조에 적응하는 것 정도가 남았다.
그런 이정후는 멜빈 감독은 물론 동료 선수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같다. 이정후는 단순히 팀의 주전 리드오프이자 중견수가 아니다. 샌프란시스코가 거액을 들여 영입한 귀한 몸이다. 동료들도 과연 미지의 KBO리그에서 어떤 선수가 왔는지 유심히 살폈을 것이다. 그런데 이정후는 이미 동료들의 마음 속에 쏙 들어갔다. 스프링트레이닝에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동료들과 거리를 좁혔다. 무엇보다 야구 실력으로 동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. 팀에 녹아들려면 동료들이 실력과 인성을 인정해야 한다. 이정후는 그 과정을 더 빠르게 거치고 있다.
포수 톰 머피는 지역 유력 매체인 ‘머큐리뉴스’와 인터뷰에서 “이정후는 훌륭한 배트 투 볼의 선수다. 그의 기술적인 수준은 그런 측면에서 특별하다. 여러분들은 이 선수처럼 삼진을 적게 당하는 남자를 많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. 그 외에도 그는 우리에게 올해 거대한 한 해를 만들게 할 수 있는 최상위권의 운동선수이자 멋지고 침착한 선수처럼 보인다”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. 이정후는 공을 방망이에 맞히는 능력이 탁월하고, 이는 적은 삼진을 보장한다. 인플레이타구 자체가 많다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. 나쁠 게 하나도 없다.
이정후 옆에서 경기를 하게 될 외야수 마이클 콘포토 역시 “그는 매우 잘 단련된 선수이고, 배럴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재주가 있다. 그는 번개처럼 빠른 손을 가지고 있다. 그는 빠르고 좋은 운동선수이며 경기를 잘 이해하고 있다”면서 “나는 우리가 봄에 본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. 우리 모두가 그에게 정말로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”고 이정후의 활약을 장담했다.
역시 외야수인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또한 “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그가 정말로 인성이 좋은 선수이며 훌륭한 팀 동료라는 것이다. 따라서 그가 이 라커룸에 있으면 좋을 것”이라고 했다. 뛰어난 수비력을 보유한 유격수인 닉 아메드의 시선도 비슷했다. 아메드는 “그는 훌륭한 야구선수로서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. 나는 유격수로서 얼어 있다가 공을 읽는 외야수와 공을 읽고 있는 외야수의 차이를 알 수 있다. 내가 뒤를 돌아봤을 때 그의 등번호를 볼 수 있고, 그는 이미 두 걸음을 내딛는 것을 볼 수 있다. 그는 이 경기장에서 훌륭한 중견수가 될 것”이라고 수비력을 칭찬했다.
이제 모든 준비를 끝낸 이정후는 29일(한국시간) 오전 5시부터 미 캘리포니아주 펫코파크에서 열릴 샌디에이고와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갖는다. 샌프란시스코라는 팀 자체가 오프시즌 가열찬 영입전을 벌이며 많은 기대치를 모으고 있는 만큼 관심이 클 것으로 보인다. 그 중심에는 이정후가 있다. 올해 샌프란시스코의 첫 타자다. 이정후의 여정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.